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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 문화삼매경

[연극/대학로] 마음으로 보는 연극 Open your eyes

 

 

 

마음으로 보는 연극 : Open Your Eyes


출연진 : 이동우, 서지유, 이수진, 류경환
장 소 : 대학로 SM스타홀 

 

 


1994년, 다섯명의 희극인이 모여 탄탄한 노래실력과 흥겨운 댄스로
활발히 활동하던 '틴틴파이브' 란 그룹을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다.

잘 나가던 개그맨 겸 가수. 그리고 부족함이 없는 결혼생활을 하던
틴틴파이브의 멤버 이동우씨는 2003년 겨울 의료진으로부터
망막색소변성증(RP)이라는 희귀병 판정을 받았다.
시력이 서서히 낮아져 급기야는 완전한 실명에 이르는 무시무시한 불치병.
이동우씨는 현재 1급시각장애인으로 정상인의 5퍼센트밖에 세상을 볼 수 없다

나는 오래전 난치병으로 인한 이동우씨의 실명 소식을 인터넷 기사를 통해 읽었다.
충격적이였지만 당시의 나는 어렸고, '실명' 에 대한 두려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듯.
물론 현재에도 근시나 난시를 제외한 시력에 이상이 전혀 없는 내가
그 사람의 아픔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느냐마는.

몇년 전에 MBC에서 이동우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사랑-내게남은 5%'의 기적' 이라는 프로그램을 봤던 기억이 난다.
그는 세상을 행복하게 사는 법을 통달한 듯, 타인에게 희망을 주는 법과
따뜻함을 전달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남아있지 않은 시력으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의욕적으로 많은 활동을 해내던 그의 모습이, 온전한 육체를 가진 나의 마음을 부끄럽게 했었다.

그가 5%의 시력으로 이루어낸 수많은 기적 중의 하나.
대학로 SM스타홀에서 공연중인 'Open your eyes' 를 직접 보고 왔다.



 

 

 
연극 'Open your eyes' 의 스토리는 주인공인 이동우 자신의 삶과 닮아있다.
닥치게 된 시련이 너무나 절망스러워 하루에 몇 차례씩 베란다 앞을
서성였던 그가 사랑하는 아내와 가까운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며
앞으로 달라질 삶을 받아들이게 된 것처럼, 주인공 윤호 또한 갑자기
시력을 잃고 좌절하고, 지인들의 배신에 분노하며, 감정의 지배를 받고 복수를 꿈꾸지만
마음의 눈으로 사랑하는 법을 깨닳고 그녀를 통해 희망을 찾게 되는 따뜻한 창작극.

사실 극 자체의 스토리나 전개는 그리 탄탄하거나 획기적이지는 않다, 전혀.
감동을 추구하는 '너무 착한' 연극이기 때문에 다소 식상할 수 있는 면이 없지 않다.
흔히 어린이용 동화에서  많이들 다루는 권선징악의 교훈을 강조하느라
몰입이 반감되는 장면도 있고.

하지만, 'Open your eyes' 가 켤코 '유치' 해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거의 남지 않은 시력으로 무대를 누비는 이동우씨의 동선에 한치의 오차도 없기 때이다.

눈 앞이 보이지 않는 그가 꽤나 큰 무대에서 장애물을 넘나들며 실감나는 연기를 한다.
혹여 부딪히지 않을까 처음에는 괜한 겁도 난다. 그러나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는지
마치 눈이 보이는 사람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완벽하다.
공연을 준비하고 연습하는동안 얼마나 많이 넘어지고 부딪히고 좌절했을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정도.

대본을 보고 외울수 없던 그는 아마 점자대본 또는 보조인이 읽어주는
대본을 외우고, 다른 배우들보다 더욱 혹독하게 연습했을 것이다.
보폭으로 무대의 거리를 재고, 각종 소품의 위치와 동선을 더듬어
일일이 더듬어 파악했을테지. 연극속 엄청난 현실은 이동우씨에게 진짜 현실이니까.

아, 극을 보고 난 후 문득 떠오른 것이 있다. 일반적인 소극장 연극이나 공연은 상황이 바뀔 때,
무대를 재설치하고 관객에게 기대와 흥미를 불러 일으키도록 암전상태를 만든다.
그리고 깜깜한 상태에서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바닥이나 벽에 형광색 스티커나 도료로
표식을 해놓는데 '오픈유어아이즈' 는 막이 끝날때마다 조명은 거두되
완전 암전 하지 않는다. 특유의 무대 조명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시력이 거의 없는 이동우씨를 위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픈유어아이즈' 의 또 다른 매력은 여주인공 서지유의 엄청난 가창력이다.
스텐딩 마이크를 통해 스피커까지 흐르는 그녀의 청아한 목소리는
듣자마자 혹 레코딩된 목소리를 그대로 들려주는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흔들림 없이 확고했다. 진지, 넉살, 능청, 가식 등의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며 1인 6역을 거뜬히 해내는 스마트 폰 같은 배우
류경환 또한 극을 지루하지 않게 풀어나가는 감초역할을 해낸다.

현재 <오픈유어아이즈> 는 관객평이 후하고 반응이 좋아 공연관계측의
배려로 12월까지였던 극이 한달간 연장되었다고 한다.
퇴근하고 롯백에 가다가 지팡이를 잡고 길을 걷고 있는 이동우씨를 만나적이 있다.
연장공연에 대한 소식을 들었던 터라 축하한다는 말을 했는데 호탈하게 웃으며
내 손을 잡아주던 따뜻하고 묵직한 손이 생각난다.
한 기사와의 인터뷰에서 “유형의 물질이 아닌 희망과 사랑을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고 말하던 이동우씨의
더 큰 기적이 반드시 이루어지길.